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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9 18:35

전화


착신,발신 합하면 총 통화시간이 170시간정도 되네요.
이 전화기를 사용한지는 아직 2년이 채 안되었어요. 한달에 9시간정도의 통화를 한 셈이군요.
분명, 지난 2년간 나는 내내 백수였는데, 백수 주제에 무슨 통화를 그리 많이 한걸까요.

요즘 통화의 대부분은 친구들.
뭐해? / 그냥 있어. // 별일없어? / 어, 그럼. // 별일없는거지? / 어, 그렇다니까.
되풀이되는 뻔한 내용의 통화들에 흥미를 잃었어요.

게다가 내 전화번호가 영화에 등장한 적이 있는관계로, 여전히 호기심많은 고딩들의 장난전화가 가끔씩 걸려오죠.

이래저래 전화를 잘 안 받게 되더군요.

장난전화에 맞장구춰줄 여유도 없고, 반복되는 뻔한 내용의 통화도 싫고,
밥사주겠다, 술사주겠다며 나오라는 전화에 매번 온갖 이유를 갖다붙여 거절하는 것도 고역이고.
전화를 없애버릴까 생각했죠.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는 것도 고역이고, 받는 것도 고역이고, 
전화씹었다고 들어오는 문자도 고역이고, 매번 거짓말로 바쁜척 하는 것도 고역이고.

누군가 술자리에서 전화했더군요.
난 얼굴도 본적없는 본인의 친구들과 술마시다가 왜 나에게 전화했는지 모르겠지만,
평균 이상의 낯가림을 질병처럼 앓는 나에게는 그 상황에서의 통화 자체가 마냥 불편하기만 하죠.
또 다른 누군가는, 뜬금없이 전화해서 밝고 명랑하게 살라더군요. 푸하하.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익숙한 뒷번호 4자리. 누굴까 싶어 받았더니.... A.
A의 번호가 바뀐지 일년이 넘도록  모르고 있었네요.

거짓말처럼, 불과 몇시간동안  말도 안되는 몇 통의 전화를 연거푸 받고,
다음날 눈뜨자 마자 SK대리점에 가서 전화를 죽였습니다. 다분히 충동적이었지요.

동생이 잠수타는거냐고 묻더군요. 그럴리가요.
난 여전히 산책하듯 부유하는 중이랍니다. 다만, 재미없는 통화에 흥미를 좀 잃어버린 것 뿐이죠.

진정한 의사소통은 정서공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데,
지금은 어차피 나의 정서를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생각해보니, 요즘 시대엔 전화 말고도 연락을 취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더군요.
전화는 끊어도, 노트북은 못 끊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어차피 갈 곳은, H대 앞과 상수동 밖에 없어요.

아, 근데....
정말 백수주제에 왜 난 한달에 9시간이나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던걸까요.
다시 생각해봐도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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