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잉여의 상태.
누군가가 그랬었죠.
너는 직장도 없고, 돈도 없고, 애인도 없고, 비젼도 없으면서, 대체 뭘 믿고 그리도 잘난척이냐고.
부정할 수는 없겠네요.
직장도 없고, 돈도 없고, 애인도 없고, 비젼도 없는 건 객관적 사실이니까요.
문제는, 나에게 없는게 그것 뿐이 아니라는거죠.
신분증이 없어요. 내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네요.
지갑을 잃어버린게 2년전인가, 3년전인가 그래요.
사진을 새로 찍고, 신분증을 새로 만들고 등등의 절차가 돈도 들도, 귀찮기도 하고, 딱히 신분증이 필요할 일도 없고 해서, 신분증 없이 지내고 있어요.
간혹 어쩌다 신분증이 필요할 일이 생기면 여권을 들고 나갔는데,
여권 기간만료일이 7월 12일까지였군요. 벌써 열흘이나 지났네요.
이로써, 나라는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완벽히 사라졌군요.
난 지갑도 없고, 주민등록증도 없고, 면허증도 없고, 이젠 여권까지 수명을 다했으니까요.
게다가, 손전화기가 없어요.
가장 보편적이고 편리하다는 통신수단을 과감히 없애버린지 3주정도 지났군요.
그러고보니,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어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네요.
한때는 어떻게 그 많은 통화와, 만남과, 모임을 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요.
이렇게 섬처럼, 그림자처럼, 완벽한 잉여로 지내는게,
조금은 이기적이고, 사치스럽다는 걸 알지만, 나름의 최선이란 생각도 들어요.
벌 하듯, 혼자 마시는 술을 스스로에게 금하고 난 이후로,
문득문득 술을 마시고 싶을 때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거나, 누군가를 붙잡고 수다를 실컷 떨고도 싶기도 해요.
여름입니다. 뜨거운 여름.
한여름의 강렬한 태양이 좀 수그러들면, 그림자도 조금 옅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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