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에 해당되는 글 44건
페이스북과 트위터 때문이란건, 핑계.
이 블로그를 어찌해야 할까요.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웃고, 어떻게 리액션을 취해야 하는건지 도통 모르겠어요.
나의 상황이나 상태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무언가를 설명하기 힘들어지면서,
영화인들이 아닌, 성실한 직장인, 착실한 사회인들과의 만남을 가급적 피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화인들과의 만남도 벅차기는 마찬가지군요.
4명 이상의 사람들을 만났던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많이 친했고, 지금도 많이 친밀한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내 화투판에서 방금 밑천을 다 털린 소심한 도박꾼마냥, 어쩔 줄 모르고 불편하게 앉아있다 왔네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와, 내가 아는 나 사이의 이 간극마저 내 탓일텐데,
자꾸 그 책임과 예의를 피하고 싶어지네요.
화투판에서 방금 밑천을 다 털린 소심한 도박꾼마냥, 어쩔 줄 모르고 불편하게 앉아있다 온 주제에,
돌아오면서는 내내,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게 마냥 미안해서 또 마음이 무겁군요.
왜 그래?... 라는 질문에, 어깨가 아파서... 라는 엉터리 대답이 통했을리 없겠죠.
나 정말, 이런 불편한 마음이 싫어요.
하하호호히히헤헤푸하하크크키득키득꺄르르껄껄낄낄큭큭... 뭐 어려운것도 아닌데,
그냥 이렇게 웃으면 되는거였는데.
후배가 보내온 옛날 사진 한장.
어느 후배 녀석의 독사진이었는데...
허걱 이곳은 총학생회실. 도대체 몇 년전 사진이란 말인가.
문제는 사진 뒤쪽에 보이는 저 선전물.
'OOO를 위한 술과 갈굼의 밤'이라니.
기억이 나지 않아요.
대체 난 얼마나 잦은 갈굼을 당했길래, 이름까지 붙여진 술자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아마도 술과 갈굼의 일상이 끝도 없이 이어졌기 때문이겠죠.
촌스러운 붉은 색깔의 리본, 낯익은 저 글씨체와,
아직도 있을지 모르는 찌그러진 사물함과
저 정수기... 그리고, 정수기 위에 스댕 그릇.
그리고,
얼굴이 훤히 드러나 오려내기는 했지만,
짜장면을 먹고 있던 당시 총대의원장, 술을 마시던 부총학생회장, 촌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던 사범대 학생회장.
오늘밤도 저 공간에서 소주를 들이켜야만 할 것 처럼,
기억이 선명한데... 벌써 7년전이군요.
근데 정말, 이 날의 갈굼은 무엇때문이었을까?
사진 속, 인물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미니홈피로^^
분명,
"걔, 피임하는거 아셨어요?"라는 대사였는데,
"걔, 파업중인거 아셨어요?"라고 써놨더라.
헐. 정신줄 완전 놓고 있다.
선거가 낼모레고, 작업은 빨리 마무리해야하고,
난 정치엔 관심없는 정치적인 딴따라이고 싶다.
전화영어를 끝내고, 아침을 먹고 나오다가,
왕십리역에 유세나온 한명숙 후보를 봤다.
사람들 왕래가 별로 없는 지역인데, 순식간에 백여명이 모여 횡단보도 앞에 모여,
"한명숙! 한명숙!"을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울컥했다.
어제, 심상정 후보의 사퇴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그렇다. 꼭 이겨야 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카페에 나와 작업을 하려고 노트북을 폈다가,
트위터에 그 내용을 남겼다.
트위터에 들어간 김에, 영화노조의 트위터를 알리는 멘션을 하나 썼다.
내친김에 가지고 있는 초대장을 모두 뿌렸다.
초대 메일을 일일이 보내면서, 6월 2일 투표하자고 덧붙였다.
앵벌이여도 좋고, 구걸이어도 좋다. 어차피 자존심 따위, 개나 주라지... 라고 생각했다.
메신저로 선거에 관심없는 친구들에게 오랫만에 말을 걸었다.
급한김에 누구누구... 찍어줬다.
그리고, 저녁이라 부를 수 있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작업을 시작했다.
한시간동안 집중해서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피임... 이, 파업...이 되어버렸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냥 한글 문서는 잠시 닫고, 문자나 돌려야겠다.
드라마나, 영화마다, 밥 먹는 장면을 매번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밥먹는 씬에 발목이 잡혀 진도가 안 나가고 있다.
식구(食口)의 친밀함, 밥의 온기,
식탁 위에서의 권력관계,
한상에 앉아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도 속내가 내비쳐지는...
그런 밥 먹는 장면을 대체, 어떻게 써야하는거지?
아, 밥 먹고 사는 것의 어려움이라니.
아, 대충 쳐먹으라고 하고 싶다...
정작, 난 저녁도 굶었는데.
코끝에는 온통 도라지 냄새 뿐이다.
그 수 많은 작법서 중에, 밥 먹는 장면을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작법서는.... 왜 없을까?.
오후 5시부터, 새벽3시까지. 하루 10시간.
삼겹살집에서 일하던 그녀가 영화판으로 돌아왔다.
일은 더 고되고, 노동시간은 더 길고, 페이는 더 작지만, 축하하고 싶었다.
우리는 결국 삼겹살 2인분을 안주삼아 소주 4병을 들이키고, 취해버렸다.
작품, 작업, 518, 노무현, 천안함, 불허된 어린이용 간염 백신까지...
그렇게 웃다가, 울다가, 또 꿈을 꾸었다.
새벽에 중국에 있을꺼라 생각했던 누군가가 전화를 했다.
지금 오라는 얘기에, 잠시 갈등했지만 차마 갈 수 없었다.
난, 괜찮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괜찮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괜찮을꺼라고 거짓말 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냥 갈 것을. 가서 그들의 상처에 좀 같이 아파해주고 올 것을 싶어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냥 괜찮을꺼라고... 얘기할 것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열정의 문제임을 확신하는가?
더 놀라운건, 어렸을땐 더 했다는거.
내가 먼저 때린 적은 없어요. 내가 욕을 내뱉은 적도 없어요.
그냥 난 다만, 다리를 좀 떨며, 짝다리를 좀 짚었고, 바닥에 침을 좀 뱉었을 뿐이죠.
그래도 껌은 안 씹었다는^^;
삼십년 넘게 살아오면서, 몇번의 전환점과 몇번의 자각을 지나고 나니,
지금 이나마.
그래서인지, 옛날의 나, 잘 기억나지 않아요.
친구는 좀 많았고, 학교 수업은 잘 안 들었고, 담배는 좀 일찍 시작했고, 공부는 좀 했고,
말은 좀 안들었고, 반성문은 좀 잘 썼고... 뭐 그 정도의 기억만 남아있어요.
그런데,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열살의 나를 기억하는 내 또래의 누군가가 있다는군요.
영화일을 하는 한 친구가, 영화일과는 상관없는 구의동의 누군가를 만났는데,
우연히 얘기에 얘기가 거듭되다가, 내 이름이 언급되었고,
구의동의 누군가는.... 어, 옛날에 우리 동네 살던 앤데.... 라고 얘기가 나왔더군요.
그분은, 내가 다녔던 교회, 대강의 우리 부모님, 그리고 나에 대해 기억을 하신다네요.
문제는, 난 그분의 성함을 들어도, 그분이 누구신지 전혀 기억이 없어요.
새벽2시, 메신저로 그 얘기를 듣다가, 궁금함을 못 견디고,
주무시고 계시는 정여사님을 깨워서 물어보기까지 했지만,
정여사님이 20여년전 내 친구의 이름까지 기억하실리는 없더군요.
갑자기 덜컥, 겁이 났어요.
넓은 세상은 설레임이지만, 좁은 세상은 두려움이네요.
그 사람이 기억하는 초등학생,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나조차 기억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분은 날 기억하게 만들었겠죠.
그 무언가가 부디 나쁜 기억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남들의 평판따위, 쌈싸먹어!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내 기억속에는 없는 이십여년전의 누군가가 날 알고 있다니, 좀 불안해지기는 하네요.
그나마 구의동에서는 착한 아이였으니까, 걱정할꺼 없잖아...그냥 내 이름이 흔치않아 기억하는 것 뿐일꺼야
...라고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어쨌거나 내가 모르는 날, 누군가가 알고 있다고 하니까 이상한 기분.
어제 새벽부터, 이를 계기로,
내 기억속에 있는, 내가 상처줬던, 나때문에 상처받았던 사람들을 헤아려보고 있는데,
어뜨케.... 너무 많아요. ㅠ.ㅠ
지금도 그렇지만, 좀 더 예전의 나는 끔찍하리만큼 형편없었어요.
그 때의 난, 왜 그리도 사랑하는 것들보다 미워하는것들이 많았을까요.
날이 밝고, 하루를 시작했지만,
어제의 이상한 기분이 계속 날 휘감고 있네요.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고 싶어요.
2년전 이맘때, 아버지의 6남매가 모두 함께 중국여행을 가신적이 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내 일을 못마땅해하는 부모님께 보란듯이 묵직한 봉투를 내밀고 싶었지만,
그때도 역시나 내 주머니에는 커피 한잔 마실 돈 밖에는 없었기에, 그냥 모른 척 했었죠.
출발하기 이틀전인가, 정여사께서 봉투를 내미시더군요.
뭐야? 까칠게 물었지만, 내심, 당시 지나친 구박이 내심 미안해서 내게 건네는 용돈인줄 알았습니다.
근데, 내 용돈이 아니었더군요.
정여사님의 말씀은,
부모가 여행을 떠나면, 보통 장성한 자식들은 경비하시라고 용돈을 건네는 법이라며,
내가 드리는 척 하며, 아버지를 드리라는 것이었어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어...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눈치없이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애써 참고, 순순히 봉투를 받았어요.
다음날, 정여사님의 말씀대로, 봉투 그대로 아버지께 건넸어요.
부모님이 중국에 가시고 난 5박6일 동안, 눈치안보고 실컷 술을 마셨어요.
맘 편히 술을 마시고 싶기도 했었고,
사람 구실 못하는 내가 한심스럽기도 하고,
난 그냥 간직한 꿈 하나 이루고 싶을 뿐인데,
왜 내 꿈은 매번, 날 이기적이고, 변변치 못한, 나쁜 사람을 만드는 걸까 속이 상하기도 했어요.
일어나자마자, 결혼식에 갔다가, 피로연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뻗고,
일어나자마자, 결혼식에 갔다가, 커피를 마시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뻗었더니,
주말이 다 가버렸어요. 1박2일의 결혼식 투어가 끝이 났네요.
모두가 특별한 사람이지만,
유독 특별했던 한 선배와, 그 녀석들.
마음을 잡지 못해 어쩌지 못했던 지난주 내내, 가지말까... 가기 싫다... 갈등했지만,
그선배와, 그녀석들의 결혼식이라 다녀왔습니다.
축의금에 얼마를 넣어야 하나 고민했어요.
축하하는 마음만큼 축의금을 할 수는 없는 거라지만,
축하하는 마음을 시니컬한 목소리로, 고작, "좋냐?", "화장했냐?", "좋~댄다"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촌스러운 난, 축의금이라도 듬뿍 넣고 싶었어요.
하지만 결국, 마음과는 달리, 주변사람들이 하는만큼만 봉투에 넣었어요.
내일은, 부모님이 친척들과 제주도여행을 떠나신다네요.
외면해지지 않는 많은 것들을, 외면하게 만드네요.
다들 결혼을 하고, 여행을 가고, 효도를 하고, 인생을 배워나가는데,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요.
대략 열흘,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사람들도 만나고,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했지만, 불편한 마음, 복잡한 머릿속.
오늘부터 정신차리고 다시 열심히 작업하자. 결심하고 나왔어요.
주변인들로부터, 뜬금없는 연락이 몇 통 왔어요. 하나같이 밥먹자... 잘 지내냐... 는 내용이었어요.
오늘 무슨 날인가? 다들 갑자기 왜? 싶었는데,
프레시안에 독한 기사가 하나 떳군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323161956§ion=06
뭐. 숨길 이유 있나요. 현실인걸.
같은 꿈을 꾸던 선배들도 이미 하나둘씩 떠났어요.
떠난 선배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내가 마냥 측은한가봐요.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곳에 있었기에 그들은 내게 더 독하게 얘기해요.
웃으며 알어알어... 대답하지만, 그 독설들에 나도 조금은 상처를 입게 마련이죠.
한참의 독설과, 한참의 설교와, 한참의 충고를 하고 난 뒤,
그들은 내게 밥은 먹고 다니라면서, 지갑에서 만원짜리 몇장 꺼내손에 쥐어주고는,
그래도 나는 니가 부럽다...라는 말로 자리를 마무리하죠.
그래었었드랬었죠. 지금은, 잘 만나지 않아요.
뭐, 괜찮을리는 없죠.
지나치게 가난하고, 지나치게 외로우니까요.
가난이야 조금 뻔뻔해져서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외로움은 쉽게 익숙해지지도 않아요.
하긴, 걱정하거나 염려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할 수는 있어도 진심으로 응원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게 나름의 애정의 방식이라는 걸 아니까요.
뭐, 그래도 괜찮다고 대답할 만큼의 여유는 아직 있어요.
네, 괜찮습니다.
어제, 두달만에 만난 누군가는,
동네 고깃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네요. 하루 12시간씩.
그래도, 잠수를 타고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몸을 움직이며 노동을 하고 있다, 들으니 맘이 놓이더군요.
그리고, 조금 행복했어요.
밥은 맛있게, 감사히 잘 얻어먹은 걸로 칠께요.
밥을 굶고 다니지는 않아요.
정여사께서 쥐어박는 소리를 좀 하셔서 그렇지,
난 오늘도 집에서 따뜻한 밥 한그릇 배불리 먹고 나왔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새콤달콤 파래무침까지 곁들어서요.
파래무침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난,
귀를 막고, 입을 막고, 눈을 감고, 손발을 멈춘채, 생각을 멈추고, 마음마저 사라져버린 괴물이 되어있었어요.
화기를 뿜어대는 괴물처럼, 독기만 내내 뿜어대는.
실은, 그래서 시작했어요. 삼십대 백수.
상처받아서도, 지쳐서도, 쉬고 싶어서도, 일하기 싫어서도가 아니라,
그냥 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을 뿐이에요.
대충 1년정도 쑥과 마늘을 먹으며 기도를 하면, 쉽게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정성이 부족했나봐요.
이제서야 내가 사람이 되었구나 싶어요.
물론, 애초에 목표가 훌륭한 사람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나, 멋진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괴물이 아니라, 그냥 사람.
3년째에요. 삼십대 백수.
그래서, 올해는 조금 욕심을 부려야겠어요.
이제 그냥 사람말고, 용감한 사람.
며칠전 읽은 '뒤바뀐 딸'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에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롬 12:15)
더 이상, 벽안에서
혼자 울고, 혼자 웃으며, 숨어있지 않을꺼에요.
용감한 사람.
겨울이 가고 있어요. 붙잡지 않겠어요.
Mark Rothko



Prev
Rss Feed